RC 국내 리포트 2

진흙 속으로
걸어 들어간 사람들

적십자 직원·봉사원·활동가가 함께한 거제 수해 복구 21일

2026년 8월 17일 새벽, 거제와 통영에 관측 이래 가장 많은 비가쏟아졌습니다. 주민 217명이 집을 떠나야 했던 3주의 기간 동안대한적십자사 경상남도지사 임직원과 봉사원들은 현장에서이재민들의 곁을 지켰습니다. 밥을 짓고, 씻을 곳을 마련하고,진흙을 걷어내며 일상의 회복을 함께했습니다.

진흙 속으로 걸어 들어간 사람들
산이 무너진 새벽, 적십자가 달려갔다

8월 16일부터 남부지방에 내리던 비는 17일 새벽, 극한 호우로 돌변했습니다. 거제에는 시간당 124.5mm, 하루 638.7mm의 비가 내려 관측 이래 최고 기록을 세웠고, 통영에서도 시간당 97.4mm, 하루 454mm가 쏟아져 1968년 관측 시작 후 최다 강수량을 기록했습니다. 도로는 순식간에 물길이 됐고, 산비탈의 흙이 마을로 밀려 내려왔습니다. 새벽 4시 32분경 거제 옥포동의 한 아파트 뒤편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인명피해가 잇따랐으며, 통영 산양읍 곤리도에서도 토사 유실로 주택피해가 발생하는 등 재난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거제소방서는오전 6시 18분 대응 2단계를 발령했고, 오전 10시 아파트 주민54가구 141명이 인근 성지중학교로 대피했습니다. 이에 대한적십자사 경상남도지사도 직원과 재난심리활동가를 대피소로급파했습니다. 피해의 심각성을 반영해 같은 날 국무총리가 직접 거제를 찾아 이재민을 위로하고 신속한 피해 복구를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대피소에 마련된 가족의 보금자리

오후 3시경, 성지중학교에 있던 이재민 38가구 98명이 옥포초등학교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적십자는 오후 4시 쉘터와 응급구호세트를 싣고 곧바로 출발했고, 저녁 6시에는 또 다른 대피소인 옥포종합사회복지관까지 두 곳에 쉘터 85동과 응급구호세트 160개를 전달했습니다. 이재민들은 응급구호세트를 통해 필요한 생필품을 공급받았으며, 쉘터 덕분에 낯선 체육관 바닥에도 가족 단위로 몸을 누일 공간이 생겼습니다. 재난심리활동가들은 불안에 떠는 주민 곁을 지키며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첫날 심리적 응급처치(PFA) 25건과 재난심리상담 62건, 이튿날에는 각각 52건과 157건이 이뤄졌고, 마음구호키트와 담요도 차례로 전했습니다. 8월 24일 아침 마지막 이재민이 대피소를 떠날 때까지 대한적십자사는 한순간도 자리를 비우지 않았습니다.

하루 세 끼, 둔덕면에 울린 밥 짓는 소리

피해가 가장 컸던 둔덕면에는 8월 19일 아침부터 급식차가 들어섰습니다. 봉사원들은 BNK금융그룹과 함께 운영한 재난구호급식소에서 하루 세 번, 이재민 380명과 복구 인력을 위한 식사를 제공했습니다. 첫날 한 끼 470인분으로 시작한 식사는 복구 인력이 늘면서 점점 불어났고, 인근 일운면 주민 20명의 몫도 함께 챙겼습니다. 복구 인력이 몰린 23일 점심에만 650인분을 지었고, 닷새 동안 6,770인분의 식사를 제공했습니다. 대한적십자사봉사회 거제시협의회 봉사원들은 조리, 배식, 뒷정리까지 역할을 나눠 맡았고, 진주·김해·함양·사천·합천 등 도내 협의회 봉사원들도 교대로 거제를 찾아 힘을 보탰습니다. 이동식 에어컨 4대가 기증돼 한여름 급식소의 열기를 식히는 등 기업과 시민의 손길도 식탁을 채웠습니다.

씻을 곳을 잃은 이들에게 달려온 샤워차

물에 잠긴 집에서는 씻는 일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흙탕물을 뒤집어쓴 채 대피소 생활을 하거나, 종일 진흙을 퍼낸 몸으로 잠자리에 드는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경남지사는 18일 경북지사에 이동샤워차량 지원을 요청했고, 샤워차는 이튿날 옥포초등학교에 도착해 오후부터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20일에는 더 많은 주민이 이용할 수 있도록 거제어촌민속전시관으로 옮겼습니다. 피해 아파트 주민들의 불편이 길어지자 26일에는 전북지사의 샤워차가 수월 힐스테이트 아파트에 도착해 9월 3일까지 머물렀습니다. 첫 주에만 380여 명, 운영 기간 전체로는 2,008명이 샤워차를 이용했습니다. 땀과 흙을 씻어 낸 봉사원과 주민들은 그제야 긴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전국의 구호 역량을 한 곳에 집중할 수 있는 통합 구호 체계는 대한적십자사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재난 이후에도 계속되는 노란 물결

물이 빠진 자리에는 진흙과 엉망이 된 가재도구가 남았습니다. 21일 아침, 마산합포구와 하동군협의회 봉사원들이 둔덕면 복구 현장에 처음 발을 디뎠습니다. 이튿날에는 함양, 사천, 합천, 고성에서, 23일에는 진주, 김해, 의령에서 봉사원들이 거제로 향했습니다. 24일에는 밀양, 거창, 산청 등지의 봉사원과 직원이, 27일에는 거제시협의회 봉사원들이 뒤를 이으며, 일주일 동안 복구 현장에 나선 봉사원만 390여 명에 이르렀습니다. 봉사원들은 침수된 집을 찾아가 토사를 퍼내고 젖은 가구를 들어냈으며, 쓰러진 농작물과 비닐하우스를 정리했습니다. 한여름 무더위에 장화 속까지 진흙이 차오르는 현장에서도 노란 조끼를 입은 봉사원들은 손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21일 둔덕면을 찾은 박완수 경상남도지사도 복구 현장을 점검하며 봉사원들을 격려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상처까지 치유합니다

복구가 길어지면서 지친 마음을 호소하는 이들도 늘었습니다. 대한적십자사는 이들을 위한 심리 치료도 제공했습니다. 8월 27일 피해 아파트 단지에 재난심리회복지원차량을 배치했고, 재난심리활동가들은 9월 초까지 이재민 거처를 오가며 ‘찾아가는 심리지원’을 펼치는 동시에 마음구호키트 411개도 전했습니다. 3주간 상담받은 주민은 550여 명, 차량을 찾은 주민은 763명입니다. 현장에는 직원 73명, 봉사원 634명, 재난심리활동가 35명 등 742명이 함께했습니다. 시민과 기업의 온정도 이어졌습니다. 신한은행, KB부동산신탁, 거제상공회의소 등 기업·단체부터 팬카페와 개인 후원자까지 거제에 12억 8천여만 원, 통영에 3억 7천여만 원 등, 모두 16억 5천여만 원을 보냈습니다. 이경미 거제시협의회장은 “갑작스러운 집중호우로 터전을 잃은 주민들에게 작게나마 힘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대한적십자사는 앞으로도 유관기관과 함께 피해 상황을 살피며 주민들이 온전한 일상으로 돌아갈 때까지 곁을 지킬 계획입니다.

불길이 지나간 자리, 마음까지 돌봅니다불길이 지나간 자리,
마음까지 돌봅니다
재난의 국경을 넘어, 가장 먼저 닿은 대한적십자사의 손길재난의 국경을 넘어,
가장 먼저 닿은 대한적십자사의 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