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C가 말하는 인도주의

등불을 든 여성들,
적십자 인도주의의 뿌리를 찾아서

나이팅게일에서 클라라 바튼, 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회까지, 164년을 이어온 이름들

1859년 이탈리아 솔페리노 전투가 끝난 뒤, 카스틸리오네 마을의 여성들은 어느 편 병사인지 묻지 않았습니다. “투티 프라텔리(Tutti Fratelli) – 우리 모두는 형제다.” 그 말 한마디가 오늘날 191개국, 1,700만 명이 함께하는 국제 적십자 운동의 씨앗이었습니다. 대한적십자사가 펴낸 『인도주의를 실천한 여성들』은 그 씨앗에 물을 준 이름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등불을 든 여성들적십자 인도주의의 뿌리를 찾아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클라라 버튼
전장의 등불이 된 여성들

1854년 크림전쟁, 플로렌스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 1820~1910)은 38명의 간호사를 이끌고 야전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전장의 사망 원인 대부분이 감염과 불결한 환경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통계로 증명하고 위생 개혁을 이끈 나이팅게일은, 뒤낭이 솔페리노를 경험하기 5년 전에 이미 구호활동의 본보기를 세운 인물입니다. 뒤낭은 말년의 회고에서 나이팅게일에 대해 “사람들은 나를 적십자 설립자이며 제네바 협약 발기인으로 부르지만, 그 명예는 한 영국 여성에게 적합하다”고 적었습니다.
한편 대서양 건너편에서는 미국 남북전쟁의 야전병원을 이끌던 클라라 바튼(Clara Barton, 1821~1912)이 1881년 미국적십자사를 설립했습니다. 그는 적십자 활동의 범위를 전쟁터에서 홍수·지진 등 자연재해 현장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고, 오늘날 적십자의 역할은 그의 선구적 주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인도주의라는 유토피아를 현실로

뒤낭 곁에는 그의 이상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탠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프로이센의 아우구스타 황후(Augusta, 1811~1890)는 직접 적십자 완장을 두르고 뒤낭의 활동을 지지하며 유럽 궁정에 적십자 운동을 알렸습니다. 평화운동가 베르타 폰 주트너(Bertha von Suttner, 1843~1914)는 스위스 하이덴의 요양원에서 외롭게 노년을 보내던 뒤낭이 노벨 평화상을 받을 수 있도록 헌신했고, 1901년 뒤낭은 제1회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경제적 위기에 처한 뒤낭을 도운 레오니 카스트너 부인, 18년간 간호를 전담한 수간호사 엘리제 볼리거, 어린 뒤낭에게 이웃 사랑의 마음을 심어준 어머니 안느-앙투아네트까지-『인도주의를 실천한 여성들』은 “뒤낭의 업적은 여성들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기록합니다.

전국 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 총회
대한적십자사 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회가 이어온 70년

대한민국 인도주의의 든든한 후원자인 ‘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회’는 1955년 사회지도층 여성들이 뜻을 모아 출범했습니다. 인도주의 정신을 실천하며 신뢰를 쌓아온 위원회는 창립 70년이 지난 지금 본사와 전국 14개 지사에서 450여 명의 자문위원이 활약하는 국내 대표 후원·자문 조직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들은 재해 이재민 구호와 봉사원 육성은 물론, 조손가정을 돕는 ‘징검다리 사랑 네트워크’, 다문화가족 및 북한이탈주민의 안정적인 정착 지원 등 소외된 이웃의 자립을 다방면으로 돕고 있습니다.특히 창립 70주년이었던 지난 2025년에는 취약계층의 쾌적한 급식·빵 나눔을 위해 적십자나눔터 개선 기금 2억 원을 기탁했으며, 매년 개최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적십자 바자’를 전국 각지에서 성황리에 열어 수익금 전액을 재난구호와 취약계층 동절기 물품 지원에 전했습니다. 과거 솔페리노의 여인들이 국적을 가리지 않고 부상병들의 곁을 지켰듯, 자문위원들은 오늘도 우리 사회 가장 필요한 곳에서 숭고한 인류애를 꽃피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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