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크로스 아너스클럽
적십자는 말없이
사회를 지탱하는 주춧돌

아너스클럽 289호·330호 회원
오연준(우)·차영화(좌) 부부
오연준 전 효진물산 대표와 부인 차영화 씨는 2024년부터 지금까지 각각 1억 원을 기부하며 대한적십자사 레드크로스아너스클럽의 27번째 부부 회원이 되었습니다.
결핵 퇴치와 수출 역군으로 살아온 삶
서울 영등포구 자택에서 만난 오연준 씨(88)는 “나는 일제강점기 교육도 받았고, 해방과 6·25를 모두 겪은 세대”라며 자신의 인생을 담담히 들려주었습니다. 그의 나눔 철학은 젊은 시절의 경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똑똑한 사촌들이 20대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는 걸 많이 봤어요. 그래서 건강과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약학을 전공한 오연준 씨는 1960년대 유유산업에서 결핵약 제제화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그 당시 결핵약은 20알씩 먹어야 했고 위장 장애가 심했어요. 이걸 어떻게 하면 환자들이 편하게 복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제제화에 기여했습니다.” 결핵으로 고생하던 환자들로부터 받은 감사 편지는 지금도 그에게 큰 보람으로 남아 있습니다.
20년간 결핵 퇴치에 힘쓴 후, 오연준 씨는 1970년대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오스트리아 학회지에서 은행잎 추출물이 혈관 질환을 예방한다는 논문을 접하고, 독일 회사와 합작으로 논산에 공장을 짓고 효진물산을 창업했습니다. “한국에는 은행나무가 많고 인건비도 저렴해서 가공 수출 사업을 시작했어요. 낙엽으로 버려지는 걸 수출해서 외화를 벌었다는 게 뿌듯했죠.” 그는 프랑스, 스위스, 독일 등지로 20년간 수출하며 ‘수출 역군’으로서의 역할을 했습니다.
병실에서 깨달은 헌혈의 소중함
오연준 씨가 적십자 후원을 결심한 계기는 2024년 4월 위 수술을 받으면서였습니다. “빈혈로 수술을 못 한다고 해서 병실에 누워 있었는데, 밤에 깨보니 혈액 팩 2개가 주사되고 있더라고요. 그 피를 기증한 사람이 누굴까 생각하니, 적십자사의 헌혈 캠페인이 떠올랐어요.” 수술 후 우연히 신문에서 본 아너스클럽 광고가 그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적십자사를 자세히 살펴보니 세가지 큰 장점이 있더라고요. 1905년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에서가장 오래된 역사,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지역에관계없이 국제적으로 활동한다는 것. 이 세 가지가 다른 기관과확실히 달랐습니다.”
오연준 씨는 적십자를 전통 가옥의 ‘주춧돌’에 비유했습니다. “시골 초가집 기둥 밑에는 항상 주춧돌이 있어요. 말없이 묵직하게 모든 걸 지탱하면서 집이 무너지지 않게 하죠. 적십자가 바로그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재난이 나면 가장 먼저 달려가 텐트를 치고 급식을 하면서 피해를 입은 이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물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하잖아요.” 약학을 전공한 부인 차영화 씨(85)는 남편과 함께 적십자 후원에적극 동참했습니다. 그녀에게도 나눔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1940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6살에 어머니 손을 잡고 38선을 넘었고, 6·25 때는 목포를 거쳐 부산까지 피난 생활을 했습니다. “천막에서 살면서도 아버지는 ‘굶어 죽어도 공부해라’고 하셨어요.” 고등학교 3년 내내 입주 과외를 하며 학비를 벌었던 그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살았습니다. “제가 어렵게 도움을 받으며 공부했는데, 적십자가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는 걸 보면서 저도 미력하지만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인도주의 정신을 다음 세대에게
오연준 씨는 손주들에게도 적십자 후원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렇게 1억을 기부하는 건 너희들에게 역사 교육을 시켜주는 거다. 언젠가 너희도 이런 활동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1970년대 본 미국 영화의 마지막 자막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휴먼 패밀리(Human Family)라는 글자가 다섯 번 깜빡이며 나왔어요. 우리 인류는 한 가족이라는 그 메시지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IT가 발전하고 사회가 변해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건 인도주의 정신이에요.” 오연준 씨는 젊은 세대들이 적십자 활동의 의미를 되새기고 일상에서 작게라도 함께해 주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적십자사는 정치적으로 중립이고, 오직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만 합니다. 모든 국민이 주춧돌 같은 마음으로 적십자사를 지켜봐 주길 바랍니다.”
오연준 씨와 차영화 씨는 적십자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적십자가 주춧돌처럼 사회를 지탱할 수 있는 건 많은 분들의 노력과 헌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십자의 활동이 120년을 넘어 계속 이어지길 바랍니다.” 그들의 여정은 이제 다음 세대에게 나눔의 가치를 전하는 또 하나의 기여로 완성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