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C 특별 인터뷰
우리가 잊은 기억,
우리가 지켜야 할 국민
원폭피해자·사할린동포 특별 인터뷰
권경석 전국사할린동포연합회 회장
정정웅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서울지부장

왼쪽 권경석, 오른쪽 정정웅
기억에서 외면된 피해자들, 한국의 원폭피해자
1945년 8월 6일과 9일, 미국은 태평양전쟁을 유발한 일본의 항복을 유도하기 위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습니다. 이로 인해 약 23만 명이 사망했으며, 이 중 한국인 피해자는 사망자 4만 명, 생존자 3만 명 등 총 7만 명으로 외국인 중 가장 많았습니다. 2025년 4월 기준, 국내에 등록된 원폭피해 생존자는 1,605명입니다.
원폭피해 1세대 정정웅 씨는 1940년대 초, 군수공장으로 강제 동원된 부모님과 함께 일본 히로시마로 이주해 다섯 살 무렵 원폭 투하를 경험했습니다. “당시 가족 모두 집 안에 있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밖에 있었던 사람들은 즉사했죠. 어머니 품에 안긴 채 피란을 가던 중 새까만 하늘에서 내린 낙진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귀국 후 정 씨는 가난과 배고픔 속에서 살아갔고, 훗날 서울시 버스 노조 위원장으로 일하던 중 또 다른 원폭피해자를 만나 자신 역시 피해자임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후 대한적십자사의 안내로 일본 정부에 피해자로 등록하고, 건강검진 등의 지원을 받게 되었으며, 현재는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서울지부장을 맡아 활동 중입니다.
고국으로의 늦은 귀향, 사할린동포의 삶
사할린동포는 일제강점기 말기 러시아 사할린으로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과 그 가족들로, 일본 패망 후 4만 3천여 명이 사할린에 남겨졌습니다. 한·러 수교 이후 대한적십자사가 지원한 영주 귀국자는 현재까지 약 5,300명이 귀국해 안산, 인천, 김포, 파주, 원주, 청주, 천안, 부산 등에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권경석 씨는 1942년 사할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혹한과 전시 배급 속에서 보냈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여긴 임시 거처일 뿐, 우리는 언젠가 고향에 돌아갈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2009년 12월, 대한적십자사의 지원으로 아내와 함께 한국으로 귀국해 파주 문산에 정착했습니다. “귀국 당시 꽃무늬 벽지의 깨끗한 아파트, 준비된 쌀과 이불, 무엇보다 한국어로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대한적십자사의 활동과 지속적인 과제
일본 정부는 원폭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했지만, 한국인 피해자에 대한 지원은 1970년대까지 실태조사조차 없었습니다. 대한적십자사는 1990년 초 한국과 일본 정부로부터 재한 원폭피해자 지원을 위임받아 실태조사 및 복지지원을 시작했으며, 2024년 기준 총 4,403명의 원폭피해자에게 진료비 지원, 원호수당지급, 건강검진 및 건강상담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정웅 씨는 “원폭피해 1세대와 그 후손들의 삶은 여전히 궁핍한경우가 많습니다. 정부와 대한적십자사의 지속적인 지원이 절실합니다”라고 강조합니다.
사할린동포 지원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1961년 대한적십자사는국제적십자위원회(ICRC)에 사할린동포 실태 파악을 위한 대표파견을 요청하는 등 사할린동포 귀국을 위한 노력을 경주했고, 1989년 일시 모국방문을 시작으로 1992년 첫 영주 귀국자 77명이 춘천 사랑의집에 정착했습니다. 이후 귀국자 역방문 사업, 2-3세 모국방문 사업과 더불어 2020년에는 관련 특별법이 제정되는 등 대한적십자사는 이산가족의 고통 경감을 위해 사할린동포와 그 동반 가족의 영주귀국 및 정착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조국에 대한 감사, 미래를 향한 당부
원폭피해자들의 아픔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도록, 국가와 국민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주길 바랍니다”라고 당부했습니다.권경석 씨는 “나라가 없다는 건 부모를 잃은 아이와 같습니다. 조국에 대한 자긍심과 나라를 지키려는 마음이 중요합니다”라며, 그는 “모국의 땅에서 자유롭게 숨 쉬고 말할 수 있다는 건 말로 다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이제는 후세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이어가주길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들의 증언은 개인사를 넘어, 분단과 식민, 전쟁의 상흔을 딛고 선 한국 현대사의 살아 있는 증거이자 교훈입니다. 그들의 삶이 존중받고, 그 기억이 사회의 의식 속에 온전히 자리잡을 수 있도록 대한적십자사는 앞으로도 그들과 함께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목소리를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함으로써, 평화의 가치와 인권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일에 앞장설 것입니다.
“참혹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강한 나라, 강한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평화를 지키는 건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참혹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강한 나라, 강한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평화를 지키는 건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