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갑수의 여행

어느 봄날, 세종마을
대한국적십자병원 터 주변을 걷다

최갑수
한국을 대표하는 여행 작가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을 다니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었다.
여행보다 우리의 인생을 더 기쁘게 하고 사랑을 더 찬란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고 말하며 지금 이순간도 어딘가 여행 중이다.
@ssuchoi

조선시대
예술가들이 살던 마을

세종마을은 흔히 서촌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서촌은 경복궁 서쪽에 있는 마을을 일컫는 별칭으로 통의동, 창성동, 체부동, 효자동, 누하동, 누상동, 옥인동, 필운동 일대를 가리킨다. 내내 서촌으로 불리다 2011년 종로구에서 세종대왕 탄신 614주년을 맞아 ‘세종마을’로 명명했다. 북촌이 양반 집권 세력의 거주지였다면, 서촌은 고관대작부터 중인, 아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분층이 함께 살아온 곳이다.이곳에서 세종대왕이 태어나고 영조가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조선 중기의 재상이항복과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가 살았다. 근대에는 화가 이중섭과 이상범, 시인윤동주와 이상 등의 예술가들이 서촌 주민이었다. 겸재 정선의 명작 ‘인왕제색도’ 가 탄생한 곳도 바로 이 일대다. 우리나라최초의 공립 보통학교인 매동초등학교와종로도서관, 20세기 초 서양 선교사 건축의 특징을 간직한 배화여고 생활관 등 역사적 건축물들도 자리해 있다.

봄이 왔다.
운동화를 신고 세종마을을 산책했다.
경복궁역에서 출발해 보안여관을 지나 한옥마을 골목을 따라 걸었다.
보안여관 앞은 대한국적십자병원이 있던 자리다.
세종마을에서는 낮은 지붕들이 이어진 한옥 사이를 걸으며 한가로이 산책을 즐길 수 있다.
골목마다 숨어 있는 독특한 카페와 갤러리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슴 따뜻한 70년대 풍경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1905년 대한적십자사
병원이 있던 곳

경복궁역에서 나와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영추문 건너편으로 허름한 건물 한 채가 등장한다. 유난히 하얀간판에 파란 글씨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보안여관은 80년 가까이 같은 자리를 지켜온 통의동의 역사 그 자체다.천재 시인 이상의 시 ‘오감도’ 에 등장한 막다른 골목이 바로 보안여관 부근이었다. 미당 서정주가 동인지 <시인부락>을 만들고, 김동리, 오장환 같은 문인들이 꿈과 희망, 현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술잔을 기울였던 곳도 이곳이다.보안여관 바로 앞은 대한국적십자병원 터다. 지금은 잠시 치워진 표석글에는 “1905년 대한적십자사 창설과 함께 개원한 병원이다. 고종의 칙령에 의해 빈민 구료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1907년 대한의원에 통합되기까지 1만여 명의 환자를 치료하였다”고 적혀 있다.
1906년 2월 12일자 <황성신문>에 실린 ‘대한국적십자사공포취지서’(大韓國赤十字社公布趣旨書)에는 “9월 15일부터 환자를치료하여 (중략) 남녀노소 치료에 수가 781인에 달하였으니”라고 적혀 있다. 창설 당시 고종이 건축비로 2만 환을 주었다고 한다. 이후 1907년 광제원, 의학교 부속병원과 함께 대한의원으로통폐합됐다.

한옥 처마 아래 골목 따라
느긋한 발걸음

보안여관을 지나면 창성동한옥마을과 만난다. 사대문 안의 한옥 1,400여 채 가운데 300여 채가 서촌에 남아 있는데, 대부분 1910년대 이후 주택 계획에 의해 지어진 이른바 생활형 개량한옥이다. 전통한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왠지 어렸을 적 살던 동네가 생각나는 친숙한 모습이다. 한옥마을에서 쌍흥문터, 해공 신익희 가옥을 지나 청운효자동 주민센터까지 가는 길은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의 연속이다. 이정표가 잘 마련되어 있지 않아 걷다 보면 길을 잃기 일쑤다. 그래도 으리으리한 한옥이 모여 있는북촌보다 낯이 익다. 고개를 들면 파란 하늘과 초록빛 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기와지붕을 타고 낮은 담장을 따라 고양이들이 산책을 다니기도 한다. 골목을 따라 이렇게 한 바퀴 돌다 내려오면발걸음은 자연스레 통인시장에 닿는다. 세종마을의 전통시장으로 일제강점기인 1941년 지금의 자리에 들어섰고 한국전쟁 이후 체부동, 누하동 등으로 피난민이 모여들면서 커졌다. 기름떡볶이로 유명하다.
경복궁 건너편은 서울경찰청. 경찰청 맞은편에는 버터향으로 발길을 붙잡는 크루아상 맛집 ‘파네트 광화문점’이 있다. 종로 방면으로 걸음을 했다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해장국집 ‘청진옥’ 에 들러보는 것도 좋을 듯. 두 곳 모두 대한적십자사의 희망나눔사업장이다.

함께하는 RC빵 굽는 온기,
떡국 한 그릇의 위로
일상 속 RC설렘 가득!
봄 산행 떠나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