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크로스 아너스클럽
시대와 가족의 아픔을 넘어
이웃과 함께하는 내일로

레드크로스 아너스클럽 회원 297호 양한종 님(아내 이연미 님)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에, 누구보다 성실히 살았습니다. 이제 그 도움을 돌려주고 싶습니다.” 한평생을 굴곡진 현대사 속에서 살아낸 양한종 씨의 기부는 가족과 조국, 그리고 사람을 향한 애틋한 책임의 표현입니다. 레드크로스 아너스클럽의 새로운 후원자로 참여한 그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아버지의 월북, 가족의 비극 그리고 가장의 책임
양한종 씨의 삶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깊은 상처와 회복의 흔적을 품고 있습니다. 독립운동을 했고 조선신탁은행 대전 지점장을 지낸 그의 아버지는 1947년 가족을 남겨둔 채 홀로 월북했고, 그날 이후 가족의 삶은 송두리째 무너졌습니다. 열한 살이던 양 씨는 하루아침에 가장이 되었고, 판잣집 단칸방에서 멀건 비지죽으로 끼니를 때우며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습니다. 한국전쟁 후 이복형마저 월북하고, 두 명의 어린 동생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린 양 씨는 동생들의 주검을 헌 가마니에 싸서 뒷산에 묻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5살에 상경해 방산시장 인근 미군 부대에서 심부름꾼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고, 이후 다방을 운영하며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했던 그는 1970~80년대 서울 중구에서 클래식 연주 주점 ‘산수갑산’을 운영하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산수갑산’은 그에게 삶의 탈출구였던 동시에 나눔의 무대였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자선 음악회를 꾸준히 열며 불우이웃 돕기에 힘썼습니다.
이후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자동차학원을 운영하며 사업가로 성공한 뒤에도 그의 나눔은 이어졌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재단 기부를 비롯해 지역사회를 위한 다양한 후원 활동에도 꾸준히 참여했습니다. “누구보다 가난하게 살았기에, 지금 내가 가진 것은 모두 누군가의 덕분”이라는 말처럼,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받은 도움을 되갚고자 애써왔습니다.
형과의 극적인 상봉, 그리고 나눔의 실천
2000년, 그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월북했던 큰형 양한상 씨를 만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병석에 계시던 노모는 아들을 향해 “왜 이리 늦었느냐”, “가지 마라”라는 말을 반복하며 오열했고, 온 가족은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양 씨의 거실 한가운데에 사진으로 남아 있습니다.
2023년, 그는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열매’를 통해 탈북민 정착 지원을 위해 10억 원을 기부하며, “아버지의 잘못된 선택으로 가족이 찢어졌기에, 탈북민을 돕는 것은 아버지를 향한작은 속죄”라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 중 5억 원은 통일부 하나원 수료생 700여 명에게 지원금으로 전달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그는 국립암센터에 2억 원을 기부해 암환자 치료 환경 개선에도 힘을 보탰습니다.
누군가의 내일에 작은 희망이 되도록
2025년 6월, 양한종 씨는 대한적십자사의 고액기부자 모임인 ‘레드크로스 아너스클럽’에 가입했습니다. 그의 기부금은 ‘독립유공자 후손 돕기’에 쓰일 예정입니다. 역사와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너진 가족사를 지닌 그는, 이제 독립운동의 뜻을 계승한 후손들을 돕고자 나섰습니다.
“나는 재벌도 부자도 아니지만, 많은 도움 덕분에 이만큼 살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 빚을 갚을 시간”이라는 그의 말은 진심 어린 다짐이자 세상을 향한 고백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