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갑수의 여행
시간의 켜가
겹겹이 쌓인 골목을 걷다
인천 개항장문화지구에서 차이나타운까지


서울에서 한 시간이면 닿는 곳 인천.
백 년 전의 시간과 오늘의 시간이 나란히 걷는 거리가 있다. 붉은 벽돌 창고와 오래된 짜장면 냄새,
헌책방의 종이 냄새가 섞여 있는 곳.
인천은 낡아서 아름답고, 오래되어서 편안하다.
서울에서 한 시간이면 닿는 곳 인천.
백 년 전의 시간과 오늘의 시간이 나란히 걷는 거리가 있다. 붉은 벽돌 창고와 오래된 짜장면 냄새, 헌책방의 종이 냄새가 섞여 있는 곳.
인천은 낡아서 아름답고, 오래되어서 편안하다.
붉은 벽돌 사이로 흐르는 근대의 시간, 개항장 거리
인천역에 내려 길을 건너면 시간여행이 시작된다. 개항장 거리는 걷는 맛이 좋은 곳이다. 근대은행과 물류창고, 구락부 등 이국적인 옛 건축물들이 박물관과 갤러리로 옷을 갈아입고 여행자를 맞이한다.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도 유명한 옛 대한통운 창고의 투박한 외벽을 손으로 쓸어보면 백 년 전 치열하게 살았던 항구의 에너지가 전해지는 것만 같다. 바로 옆 한국근대문학관은 일제강점기 물류 창고를 개조해 만들었는데, 목조 천장의 고풍스러운 분위기 아래 최남선, 한용운, 김소월, 백석 같은 기라성 같은 문인들의 숨결이 머물러 있다.

영혼을 달래주는 한 그릇, 짜장면
인천까지 와서 짜장면을 먹지 않는 건 일종의 직무 유기다. 개항 후 산둥지방에서 건너온 부두 노동자들의 배고픔을 달래주기 위해 탄생했다는 이 검은 국수는 이제 한국인의 ‘소울 푸드’가 되었다. 공화춘의 맥을 잇는 신승반점을 찾았다. 유니짜장은 재료를 잘게 썰어 소스를 만드는데, 목 넘김이 부드럽고 짜지 않아 좋다. 면 위에 살포시 올라간 계란 노른자를 터뜨려 비빈 후, 종이처럼 얇게 썬 단무지를 곁들여 후루룩 넘기면 입안 가득 고소한 행복이 퍼진다. 배를 채웠다면 본격적으로 차이나타운 여행에 나서보자. ‘삼국지 벽화거리’는 삼국지의 명장면 160개를 벽화로 그려 놓았다. 길을 걷다 보면 고사성어와 그림으로 표현된 삼국지 이야기가 새록새록 떠오른다. 벽화거리를 지나 언덕을 오르면 자유공원이다. 개항 당시만 해도 ‘각국공원’으로 불리며 ‘존스턴 별장’을 비롯한 외국인 사택과 공장 등이 들어서 있었지만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초토화되면서 대부분 소실됐다. 현재는 인천상륙작전의 시발이 된 월미도를 바라보는 맥아더 장군의 동상과 한·미 수교 100주 년 기념탑 등이 남아 있다. 뱃머리 모양의 전망대에 오르면 가깝게는 인천항, 멀게는 인천대교까지 내려다보인다.
차이나타운 바로 옆에는 송월동 동화마을이 있다. 가족 단위 여행객과 연인의 데이트 코스로 사랑받는 곳이다. 세계 명작 동화를 테마로 마을을 꾸몄다. 백설공주, 오즈의 마법사, 피터팬 등 명작 동화 주인공들이 상점은 물론 빌라, 유치원, 마을회관, 계단에 그려져 있다.


헌책 냄새와 성냥공장의 추억, 배다리 마을
배다리골 탐방의 시작은 동인천역 앞 중앙시장이다. 중앙시장은 한복 골목으로 유명했다. 1·4후퇴 당시 황해도에서 내려온 실향민 가운데 바느질 솜씨가 좋은 아낙네들이 옷가지를 만들어 내다 파는 가마니 좌판을 벌인 데서 비롯됐다. 지금도 크고 작은 한복 매장 70여 곳과 침구, 커튼을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다.
배다리골은 19세기에 수문통 갯골과 이어지는 큰 개울이 있었고 밀물 때면 바닷물이 드나들었다. 배를 댄 다리가 있어 배다리라 불렸다. 1899년 경인선이 개통되고 제물포에 조선 침탈을 위한 조계지가 만들어지자 그곳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배다리와 송현동, 수도국산 주변으로 몰려들면서 마을이형성됐다. 시장이 들어섰고 공장과 학교가 세워졌다. 중심 거리 우각로에는 외국인 여선교사 사옥, 창영초등학교 등 근대 건축물이 지어졌다.
중앙시장을 나오면 배다리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배다리길, 우각로, 창영길, 금곡길 등이 이어진다. 길조여인숙, 성진여인숙, 진도여인숙 등 요즘 보기 드문 여인숙들이 골목에 가득하다. 여인숙 골목은 경인철도 부설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지금은 전시, 문화시설로 바뀌었다.
여인숙 골목을 빠져나오면 헌책방 골목이다. 한국전쟁 이후 리어카 책방이 모이면서 만들어졌는데 그 수만 40여 개에 이르렀다. ‘작은 청계천’으로 불리던 골목에는 새 학기가 되면 교과서와 참고서를 구입하려는 학생들로 붐볐다. 지금은 대여섯 곳 정도만 남아 한산하다. 골목 초입의 ‘아벨서점’은 37년 내력을 지닌 터줏대감이다. 헌책 마니아들에게는 ‘성지’ 로 꼽힌다.
배다리 거리에서 꼭 가보길 권하는 곳은 ‘배다리 성냥마을박물관’이다. 1917년 우리나라 첫 성냥공장 ‘조선인촌주식회사’가 있던 자리다. ‘인촌’은 ‘도깨비불’을 뜻하는 말. 옛날에는 성냥을 ‘인촌’이라고도 불렀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성냥공장과 생활 변화상을 다룬 전시로 꾸며져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 추천한다.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 인천적십자병원
여행이 마음에 주는 위로라면, 병원은 몸에 주는 위로일 것이다. 연수구에 자리한 인천적십자병원은 인천의 역사와 함께해온 공간들처럼, 인천 시민들의 곁을 묵묵히 지켜온 든든한 이웃이다. 배다리 마을에서 차로 조금 이동하면 닿는 이곳은 단순한 병원을 넘어 ‘공공의료’라는 적십자의 인도주의 정신을 실천하는 현장이다. 대학병원급 최신 장비와 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문턱은 낮고 품은 넓다. 특히 최근에는 지역거점공공병원으로서 응급실과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강화하며 의료 사각지대를 없애는 데 앞장서고 있다.


최갑수
한국을 대표하는 여행 작가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을 다니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었다.
여행보다 우리의 인생을 더 기쁘게 하고 사랑을 더 찬란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고 말하며 지금 이순간도 어딘가 여행 중이다.
@ssucho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