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C 국내 리포트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까지 치유합니다

트라우마 치유와 재난심리지원의 중요성

2020년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 보건 참사부터 2022년 핼러윈 데이를 앞두고 발생한 이태원 참사, 2024년 여름 31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화성 화재 참사에 이어 12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까지 연이은 재난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불안감과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적십자는 재난 이후의 정서적 아픔까지 보살피기 위해 아낌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까지 치유합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가장 먼저 달려간 대한적십자사

2024년 12월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발생 후, 적십자는 가장 먼저 현장을 찾았습니다. 사고 현장과가까운 광주·전남지사를 중심으로 구조 및 피해자 가족 지원을위한 긴급 구호활동을 신속하게 진행했습니다.
먼저 광주·전남 지역의 직원과 구호요원, 봉사원 등의 구호인력과 재난대응차량, 회복지원차량 등 구호장비를 현장에 긴급 투입했습니다. 이어서 담요, 라면, 생수, 비상식량세트 등 구호물품을전달하고, 피해자 가족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공항에 재난구호텐트를 설치했습니다. 구조인력과 피해자 가족을 위한 하루1,600인분의 식사 제공 또한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적십자 광주·전남, 전북, 경북, 경남, 충남 등의 지사에서는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의 전문 상담가와 장비를 현장으로 급파했습니다. 이들은 대규모 인명 피해로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피해자 가족들의 심리적 응급처치 및 심리상담을 제공하며 충격과슬픔을 완화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재난이 남긴 상처,
마음까지 보살펴야 합니다

재난사고는 유가족과 생존자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깊은 심리적 영향을 미칩니다.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사건을 접한 누구에게나 여러 심리적·신체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고, 그 후유증이 오래 지속될 수 있습니다. 심장박동 증가·불면·소화불량·근육 긴장· 피로감·식욕 저하 등과 같은 신체 반응을 경험하기도 하고, 사고현장 이미지나 관련 소식이 반복적으로 떠올라 악몽·무력감·분노·우울감 등으로 고통받기도 합니다.
재난 후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자와 유가족, 목격자 및 이 사고로 충격을 받을 수 있는 많은 사람의 심리적 고통과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일입니다. 참사와 같이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회복하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과 주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살피고 안정을 취하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더불어 생존자와 유가족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가족, 친척, 친구와 슬픔과 고통을 나누거나 재난회복지원 그룹 등을 통해 같은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도 추천합니다.

재난 후까지 이어지는
재난심리회복지원 활동

행정안전부와 대한적십자사는 재난으로 마음에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산불, 태풍, 지진, 교통사고 등 각종 재난 현장이나 이재민대피소 등 재난경험자가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무료 상담을 진행하며, 이를 통해 심리적 안정과 사회 적응을 지원해 피해자들이 일상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재난관리 4단계(예방-대비-대응-복구)에 맞춰 재난 발생 전에는 홍보 및 캠페인 활동을 진행하며, 재난심리 활동가를 대상으로 PFA(Psychological First Aid, 심리적 응급처치) 및 재난심리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재난 발생 시에는 현장 PFA 실시 및 심리상담을 전개하고, 복구 후에도 재난경험자를 대상으로 ‘마음구호 프로그램’ 및 상담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 위탁사업으로 전국 17개 시·도에서 운영 중인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에서는 방문 및 전화 심리상담, 재난심리회복 전문가 및 심리회복 전문인력 양성, 재난심리회복지원 기초조사 및 활성화 연구, 중앙부처와 지자체의 네트워크 구축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채정호(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교수.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창립회장)
20년 전 외상후스트레스성장애 연구회를 창설해 새로운 트라우마 전문기술을 정신의학계에 전파하고 있다.현재 긍정네트워크 옵티미스트 클럽 회장과 긍정학교 교장으로 활동 중이다. 유튜브 채정호TV

트라우마와 연대: 우리를 잇는 금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참으로 많은 재난을 쉴 새 없이 겪어내고 있다. 참사 직후 일어난 온 국민의 애도 분위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그라지고, 당사자들만이 고통 속에 남겨진다. 그들이 마주하는 것은 차가운 현실이다. “이미 지나간 일인데 아직도 힘들어해?”라거나 “그렇게 약해서 어떻게 살아?” 같은 무심한 말들이 비수가 되어 마음에 박힌다. 심지어 트라우마 경험자들을 향한 지원과 관심에 ‘사회적 비용’이 아깝다며 거부감을 드러내는이들도 많다.
하지만 사회적 재난은 한 개인이나 특정한 집단에게만 일어나는일이 아니다. 언제든 누구라도 당사자가 될 수 있다. 큰 참사일수록 사회가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지 않고 제대로 된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할 때 찾아온다. 그렇게 벌어진 피해와 고통을 ‘그들만의 문제’로 여겨버린다면, 어느 순간 나에게 벌어질 수도 있는 다음 재난은 ‘나만의 문제’가 되어버릴 것이다.
참사 이후 남겨진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의 아픔을 외면하는 모습을 보며 또 한번 상처받는다. 트라우마는 삶 전체를 뒤흔드는깊은 충격이다. 트라우마 경험자들은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세상을 살게 된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불안해지고, 힘든 기억이떠오를 때마다 마음이 무너진다. 타인과의 관계도 어렵고, 자신을 지탱하던 신념조차 흔들린다.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절망 속에서, 작은 자극에도 쉽게 상처받을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그 어떤 보상이나 지원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하지만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것이 약점이 아니며 인간이라면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함께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를 ‘트라우마 민감 접근(Trauma- Sensitive Approach)’이라고 한다. 우리 모두는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경험한다. 그러므로 누구를 만나더라도 우리는 조금 더 배려하고, 그 사람의 감정이 어떠하든 존중하며, 강요하지 않고, 안전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우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인간은 본디 연약한 존재다. 그러나 동물과는 달리, 우리는 서로를 돕고 협력해 이렇게 지구를 지배하며 살아남아왔다. 한 사람은 쉽게 무너질 수 있지만, 함께할 때 우리는 강해진다. 현대 사회는 점점 더 한 개인의 능력을 강조하며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왜 내가 낸 세금을 그들에게 써야 하는가?”라며 냉소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란 결코 독립적이지 않다. 우리는 타인과 얽혀 살아가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서로를 지탱한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사랑은 금실처럼 우리를 연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은 우리에게 마치 모래알처럼 따로따로 살아가라고 요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서로를 필요로 한다. 내가 내미는 작은 손길 하나가 누군가의 삶을 꽉 붙잡아낼 수 있다. 만약 트라우마 경험자들에게 적절한 지원과 치유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점점 더 사회로부터 소외될 것이다.

“그들이 무너진다면, 우리 사회 또한 함께 무너질 것이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상처는 결코 개인에게만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트라우마 경험자들에게 연대와 지지를 보내야 한다.”

그들의 아픔을 나누고, 그들이 세상과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곧 우리를 하나로 묶는 금실이 될 것이다. 약해 보이는 그 금실이 결국 우리 모두를 지켜주는 생명의 동아줄이 될 것이다.

역사 속 대한적십자사생명이 위급한 순간,
달려가는 사람들
RC 해외 리포트붕대 하나, 붓질 하나로
연결된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