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갑수의 여행
눈부시게 푸른 바다에 취하고
그윽한 예술 향에 반하다


통영을 찾았다.
바람은 잔잔했고 바다는 배부른 고양이처럼 순했다.
통영에 있는 동안, 짧은 시간이었지만 넉넉하고 평안했다.
마른 오이처럼 오그라들었던 마음은 반듯하게 펴졌고
날카롭게 날이 섰던 정신도 한결 누그러졌다.
동백 따라 달리는 해안드라이브
서울을 빠져나온 지 네 시간. 통영에 들어서자마자 충무대교를 넘어 미륵도로 향하는 산양 일주도로에 올랐다. 달아공원과 해양수산과학관, 충무 마리나 리조트로 이어지는 이 길은 국내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해안도로다.
길은 심전도 눈금이 요동치듯 오르락내리락한다. 한 허리를 꺾어 돌면 아담한 포구가 나타나고, 다시 고갯길을 넘으면 푸른 바다가 눈앞에 열린다. 산양읍으로 접어드는 갈림길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돌면 통영만 달아공원이다. ‘달아’라는 이름은 이곳 지형이 코끼리 어금니와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 ‘달구경 하기 좋은곳’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고 한다. 공원 입구 도로변에 마련된주차장에 차를 대고 5분 정도 완만하게 닦인 공원길을 올라가면관해정이라는 정자가 나오는데, 이곳에 서면 이름을 갖지 못한작은 바위섬에서부터 재도, 저도, 송도, 학림도, 곤리도, 연대도,만지도, 오곡도, 추도 그리고 멀리 욕지열도까지 수십 개의 섬이한눈에 들어온다.
김춘수 시인은 언젠가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바다가 없는 곳에 사는 것은 답답하다. 바다가 보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내 고향 바다는 너무 멀리 있다. 대구에서 20년이나 살면서, 서울에서 10년 넘어 살면서 나는 자주자주 바다를 꿈에서만 보곤 했다. 바다는 나의 생리의 한 부분처럼 되었다. 특히 통영 앞바다, 한려수도로 트인 그 바다는 내 시의 뉘앙스가 되고 있다고 나는 스스로 생각한다.”
미륵산 정상에서도 통영 바다를 잘 볼 수 있다. 미륵산의 높이는 해발 461미터. 그다지 높은 산은 아니지만 풍광은 1000미터급 이상의 산 못지않게 화려하다. 케이블카(통영관광개발공사)를 타고 쉽게 오를 수 있다. 통영 출신 시인 이향지는 미륵산에서 내려다본 다도해 풍광을 이렇게 표현했다. “미륵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다도해 풍광은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한다. 동해처럼 광활하고 거친 힘이 아니라, 서해의 갯벌 앞에서 느낄 때 같은 막막함이 아니라, 수면 위에 떠 있는 무수한 섬, 올망졸망한 섬들을 둘러싼 물안개로 인해 더욱 느끼게 되는 부드러움이다.”
* 통영관광개발공사는 경남적십자사 희망나눔 사업장 5950호점으로 도내 위기가정 긴급지원을 정기후원하고 있다.
예술가의 고장, 통영
통영의 눈부신 바다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어디 이뿐일까. 봉평동의 전혁림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한국 추상화의 대가로 꼽히는 전혁림 화백은 통영에서 나고 자랐다. 미술학교 한번 변변히 다니지 못했지만, 미국의 한 미술 잡지에서 한국 10대 화가로 꼽기도 했다. 전혁림 미술관은 전혁림 화백의 작품 70여 점을 전시한 곳. 건물 외벽의 타일은 전 화백의 그림을 기초로 디자인했는데 연한 하늘빛부터 검푸른 빛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푸른빛이 인상적이다.
그의 그림을 보다 보면 온통 푸른색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통영 바다의 강력한 푸른색이 그를 사로잡았으리라. 전 화백은 전시관의 한 게시물에 “통영 앞바다는 저 멀리 스칸디나비아나 지중해, 알래스카에서 밀려온 파도가 아닐까 싶었다”라며 “내 그림에 나타나는 파란색의 이미지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고 써놓았다.
통영에 왔다면 청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남망산 공원으로 오르는 입구에 그의 시 깃발이 세워진 시비가 서 있다. 통영 시내의 청마거리도 돌아보자. 청마 유치환과 정운 이영도의 애틋한 러브스토리가 스민 곳이다. 청마는 통영우체국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서 정운 이영도에게 연서를 썼다. 건너편 이층집은 정운이 살았던 곳. 사모하는 연인의 집이 바라보이는 우체국에서 편지를 쓰는 청마의 마음은 얼마나 애달팠을까. 그 마음만큼이나 붉은 우체통이 우체국 정문 앞에 놓여 있다.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오늘도 나는/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너에게 편지를 쓴다”
망일봉 청마문학관에는 청마 흉상과 빛바랜 육필원고, 유품 1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청마문학관 뒤편에는 청마 생가도 복원돼 있다.
서호시장 건너편에 통영적십자병원이 자리한다.통영적십자병원은 1950년대 후반 또는 1960년대 초반에 설립되어 도서 및 어촌 지역의 의료 인프라로 기능하며 도서 주민 및 취약 계층을 위한 진료 활동에 매진했다. 물론 지금도 그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바다가 차린 산해진미
통영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은 시락국(시래깃국)이다. 시락국은 장어머리를 고아낸 국물에 된장을 풀고 무청을 넣어 끓여내는데, 산초(제피)가루와 김가루, 잘게 썬 고추와 부추무침을 먹는 사람 입맛대로 넣는다. 뜨끈한 국물이 맵싸한 산초가루의 향과 어우러져 시원한 맛을 낸다. 통영에 갔는데 충무김밥을 먹지 않는다면 서운하다. 1960~70년, 부산과 여수, 거제 등을 오가는 뱃길의 중심지였던 통영 여객터미널에는 언제나 뱃사람과 상인들이 북적였고, 이들을 상대로 한 요깃거리는 늘 인기였다. 이때 등장한 것이 충무김밥. 간단하고 상하지 않아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충무김밥은 맨김으로 싼 밥과 ‘슥박김치’라고 불리는 무김치, 그리고 시락국이 전부다. 짠맛보단 시원한 맛과 매콤한 맛이 우선인 슥박김치는 사각사각 씹는 맛이 일품이다.




최갑수
한국을 대표하는 여행 작가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을 다니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었다.
여행보다 우리의 인생을 더 기쁘게 하고 사랑을 더 찬란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고 말하며 지금 이순간도 어딘가 여행 중이다.
@ssu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