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C 사람들
그들의 무전은
멈추지 않았다
30년간 재난 현장을 지켜온 이도희, 김양섭 구호요원
대한적십자사 재난대응봉사회 구호요원들은 누구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해, 마지막까지 구호활동을 지원합니다.

무전기 하나로 시작된 구호활동,
30년을 이어오다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대한적십자사 구호요원(재난대응봉사회)은 현재 전국 400여 명 규모로 운영되며, 각종 재난 현장에서 인도주의적 가치를 실천하는 핵심 인력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마추어 무선통신사(HAM)들로 이루어진 아마추어무선봉사회가 그 시작으로, 이후 체계적인 재난대응 조직으로 발전했습니다.
서울지사 재난대응봉사회 소속 이도희(1954년생), 김양섭(1963년생) 구호요원은 성수대교 붕괴 사고,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당시 현장에서 구호지원 활동에 나섰던 30년여 경력의 베테랑 구호요원입니다.

성수대교 붕괴 현장,
가장 먼저 달려가다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가 붕괴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서울 시민들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벌어진 갑작스러운 참사였던 터라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이날 현장으로 가장 먼저 출동한 이도희 구호요원은 사무실에서 사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창밖을 보니 성수대교가 끊겨 있었 어요. 곧바로 적십자에 연락했고, 성수대교와 가까운 곳에 있던 제가 가장 먼저 현장으로 향했죠.”
그는 무전기로 대한적십자사 본부와 실시간으로 교신하며 현장 상황을 전달했고, 구조대원을 위한 급식차와 의약품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한편, 김양섭 구호요원은 집에서 아침식사를 하던 중 사고 소식을 듣고 즉시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해군 출신이었던 그는 해양경찰과 함께 보트를 타고 성수대교 상판으로 올라가 생존자 구조에 나섰습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 해양경찰과 힘을 합쳐 구조를 진행했어요. 그리고 이도희 요원을 통해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본부에 전달하고 경찰과 소방, 다른 지원팀에 상황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119 구조 시스템이 지금처럼 체계적이지 않았던 시절이었던 만큼, 구호요원들의 무전 시스템은 현장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무전이 유일한 연결고리였다
1995년 6월 29일 오후, 평소처럼 퇴근하던 이도희 구호요원은무전에서 긴급한 신호를 들었습니다.
“삼풍백화점 붕괴로 정체되니 우회 바랍니다.”
그는 곧바로 방향을 돌려 사고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현장에 도착한 구호요원들은 즉시 무선통신본부를 설치했고, 구조작업을 위한 본격적인 지원에 나섰습니다.
“백화점이 붕괴되면서 전화와 전기가 모두 끊겼어요. 유일하게 연 결이 가능했던 것이 저희 구호요원들의 무선통신이었죠.”
현장에서 뒤늦게 합류한 김양섭 구호요원도 무선통신을 지원하며 구호용품 접수를 도왔습니다. “구호물품이 쏟아져 들어왔지만 접수할 공간도 부족하고 조율이 어려웠어요. 그때 기업들이 ‘반환이나 세금 처리는 필요 없으니 필요한 데 써달라’며 구조장비를 제공해주셔서 큰 도움이 됐습니다.”
당시 경찰과 소방의 무전 시스템은 관할지별로 주파수가 달라 소통이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구호요원들이 구역별로 배치되어 상황을 소방지휘본부로 전달했고, 지휘본부에서는 경찰과 소방에 신속하게 정보를 공유하며 원활한 구조작업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특히, 헬리콥터 접근 금지 요청을 무전으로 전파한 것도 바로 구호요원들의 기지 덕분이었습니다. “헬리콥터가 지하층 위를 저공비행하면서 생기는 진동 때문에 추가 붕괴 위험이 있었어요. 즉시 항공통제본부에 연락해 헬기 접근을 금지하도록 요청했습니다.”
가장 먼저 도착하고,
가장 늦게 떠나는 사람들
30년 넘게 재난 현장에서 활동해온 두 구호요원은 이제 재난구호 강사로도 활동하며 후배들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김양섭 구호요원은 말합니다. “처음엔 무전이 좋아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재난 현장을 경험하면서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지 알게 됐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도착하고,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돕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도희 구호요원도 덧붙였습니다. “봉사는 나누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재난 현장에서 우리는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그 과정에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죠.” 그들이 지나온 30년의 시간은 단순한 자원봉사가 아니라, 재난의 모든 순간을 온몸으로 겪어내며 그 속의 사람들과 함께하는, 아름답고 치열한 과정이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들은 현장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있습니다.
“봉사는 나누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재난 현장에서 우리는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그 과정에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