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갑수의 여행
가을 초입
느긋한 마음으로 걸었다
광주 충장로에서 양림동까지


광주에 걷기 좋은 골목이 있다.
길은 도심 한복판을 지나고 천변도 따라가다가 한옥이 있는 좁은 골목길에서 멈추기도 한다.
그러다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만든 아기자기한 작품들이 전시된 골목에서 끝난다.
광주의 예술을 감각하다
첫 코스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Asian Culture Center, ACC). 지난 2015년 11월 개관했다. 아시아의 문화 교류와 문화자원 수집· 연구, 콘텐츠의 창작과 제작, 전시, 공연, 아카이브, 유통 등이 모두 이루어지는 복합문화예술공간이다. 규모나 전시 등 모든 측면에서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한다.
아무래도 광주의 지역적 정체성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요람인 만큼 전시기획 역시 이러한 정체성을 근간으로 전 세계인들이 공감하는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아시아문화전당 바로 앞이 전남도청, 가까운 곳에 구 광주적십자병원 터가 있다. 1980년 5월,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 속에서 수많은 시민과 시민군이 이곳으로 후송되어 치료받았고, 당시 헌혈 차량이 시내를 돌며 부상자 치료를 위한 자발적 헌혈을 이끌어냈다. 1996년에 서남대학교에 인수되어 ‘서남대학교병원’(남광병원)으로 운영되었지만 2014년에 결국 폐쇄됐다.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 배경으로도 등장한다.

광주의 어제와 오늘을 느끼며 걷다
예전에는 충장로를 중심으로 광주읍성이 빙 둘러쳐져 있었다고 한다. 지금 광주 우체국 자리가 중심이었다고 하는데, 지도에만 남아 있다. 충장로 1가에서 3가 일대에는 대형 패션물과 의류매장이 들어서 있고, 충장로 4~5가는 한복 거리와 도매 상가 거리로 꾸며져 있어 드문드문 옛 전통시장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충장로가 있는 동구는 일제강점기 당시 ‘본정통’이라 불렸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광주의 중심이었고 그만큼 역사가 깊다. 당연히 문화도 발달했다. 이곳에 ‘예술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는 이유이다. 예술의 거리는 호남의 문화와 예향 광주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거리로 광주 중앙초등학교 뒤편 사거리에서 동부경찰서까지 300미터쯤 된다. 길 양쪽이 온통 갤러리와 화방, 도자기 가게로 빼곡한데, 특히 한국화와 서예, 남도창을 중심으로 한 남도 예술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많다.
거리 한가운데 ‘궁전제과’ 본점이 있다. 옛날 서울 사람들이 종로서적 앞을 약속 장소로 정했듯, 광주 사람들은 약속 장소를 정할 때 “궁전제과 앞에서 보자”고 했단다. 광주에 오면 사람들이 꼭 한 번은 들른다는 빵집이다. 나비파이와 공룡알빵이 유명하니, 들른다면 꼭 맛보길 추천한다.
궁전제과에서 큰길을 건너 조금 걸어가면 광주극장이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세워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이자 국내 유일의 단관극장이다. 지금은 독립영화를 주로 상영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창극과 판소리 공연도 열렸다고 한다. 극장 앞에는 페인트로 그린 ‘헤어질 결심’ 간판이 걸려 있다. 고등학생 때는 직접 그린 간판을 내건 극장이 많았다. 새 간판이 걸릴 때마다 어떤 영화일지 궁금해 하기도 하고 그림이 실제와 달라 웃기도 했다.
극장 옆 좁은 골목으로 영화 거리가 이어진다. 50미터 남짓이지만 골목 입구부터 광주 극장들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설치물로 알차게 꾸며져 있다. 그 옆으로 옛 매표소 모습도 그림으로 그려놓았다. 작은 창에 돈을 내밀면 표를 주곤 하던 옛 극장 매표소가 떠오른다. 극장에 들어갈 때는 표를 검표원에게 보여주고, 검표원은 ‘펀치’로 동그란 구멍을 뚫어 다시 돌려줬다.

느긋하고 여유롭게 양림동 산책
마지막 코스는 양림동 펭귄마을이다. 양림동 주민센터 뒤쪽에 펭귄 조형물과 팻말이 있다. 젊은이들의 데이트 코스로 관심을 가장 크게 받는 곳이다. 마을 이름이 느닷없이 웬 펭귄이냐고 할 수도 있겠는데, 이곳에 사시는 무릎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펭귄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주민들이 화재로 방치된 빈집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온 폐기물과 쓰레기로 정크아트를 만들어 골목 벽면에 내걸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는 ‘펭귄주막’과 인근 담벼락까지 이제는 마을 전체가 전시장과 다름없다. 비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지난 70~80년대 고샅 풍경이 펼쳐진다. 전화기, 자전거, 풍금, 시계, 주전자 등 고물들이 늘어선 풍경이 낯선 듯 익숙하다. 마을을 둘러보는 데 1시간이면 충분하다.
걷다 보면 버드나무가 살랑이는 광주천을 따라 다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돌아온다. 늦은 오후에 산책을 시작했다면 거리의 상점마다 불을 밝히기 시작했을 것이다. 광주는 아시다시피 맛의 도시기도 하다. 마음에 드는 음식점으로 들어 가 광주의 맛을 즐기면 된다.


최갑수
한국을 대표하는 여행 작가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을 다니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었다.
여행보다 우리의 인생을 더 기쁘게 하고 사랑을 더 찬란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고 말하며 지금 이순간도 어딘가 여행 중이다.
@ssuchoi




